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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3:24~35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에 벌어진 사건을 요약해 보면 성전에서 결례를 행하다가 체포된 후에 유대인들을 향해 1차 변론을 하였고, 23장에서 공회 앞에서 2차 변론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40명의 유대인 결사대의 암살 음모를 피해 가이사랴 총독에게로 이송되었는데, 24장에는 총독 벨릭스 앞에서 변론을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 25장에는 새로 부임한 총독 베스도 앞에서 변론을 하고, 26장에는 아그립바 왕, 27~28장에서는 로마로 호송되어 가는 과정에 풍랑을 만나게 되지만 마침내 로마에 도착하는 과정이 나옵니다.

이러한 과정을 하나 하나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닫게 되는데, 이미 사도 바울은 로마 선교를 계획하고 있었고 당시 땅끝이라고 여겨지던 서바나까지 선교하려는 원대한 비전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와같은 비전을 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충분히 피할 수도 있었지만 고난의 십자가를 피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겪은 일들은 무의미한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서 수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그 순간마다 변론을 하면서 복음을 변증하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먼저 계시되었지만 저들은 끝끝내 저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로마의 통치자들이 사도 바울의 무죄를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사도행전을 기록한 주요 목적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행전은 데오빌로를 수신자로 하고, 로마를 향해 복음을 증거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본문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앞으로 일어나게 될 수많은 재판에서 판례, 즉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위험한 종교가 아님이 로마의 지방 관원들을 통해 입증하려고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천부장은 24절,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게 하였고, 또 총독에게 보내는 “편지”(25절)를 동봉하였습니다. 그래서 26절 이하에는 편지의 내용이 나오는데, 지금까지 천부장으로만 알려져 있던 사람은 “글라우디오 루시아”라는 사람이었고 편지를 받는 사람은 “총독 벨릭스”였습니다. 여기서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가 총독 벨릭스에게 써서 보낸 편지는 앞으로 사도 바울과 같은 기독교인에 대한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29절을 보면,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들은 사도 바울을 정치적 소요를 일으킨 형사사건으로 고발하였지만 루시아는 이 사건의 본질이 종교적인 것이기 때문에 바울을(기독교인) 죽이거나 결박할 사안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어쨌든 바울은 벨릭스 총독에게 호송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35절을 보면 벨릭스는 ‘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이 아니라 무죄로 추정되고 있었기 때문에 재판을 기다리기 위해 가벼운 연금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와같은 과정을 통해서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기독교가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공식 종교로서의 지위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습니다. 이게 왜 중요한 문제였냐면, 이방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에 의해 기독교가 용인된다는 것은 장차 세계 선교의 중요한 발판을 구축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쨌든 이 과정은 사도 바울, 한 사람에 국한된 개인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장차 기독교의 역사적 전기를 마련하고, 열방과 세계를 향해 복음이 증거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사건이 되는 과정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 제목>

하나님의 섭리를 굳게 신뢰하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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